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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카드 브랜드 매트릭스
    + 2022. 1. 19. 21:53

    <무제> 도널드 저드, 1992

     

    현대카드 정태영 CEO가 진행한 브랜딩 강의 시리즈를 몰아서 보았다. 유튜브에 부록까지 포함해 약 일곱편이 공개되어 있는데, 나름 브랜딩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던 나로써도 신선한 내용들이 있어 한번 시간을 내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이러한 종류의 컨텐츠를 소비할 때 주의깊게 찾는 포인트는 나의 업무에도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구조화된 로직이다. 필립 코틀러나 세스 고딘 같은 세계적인 마케팅 구루들의 서적들은 때로는 너무 일반론에 가까워 오히려 이에 해당하지 않는 기업이 과연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반면 시중에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마케팅 관련 컨텐츠들 - 특히 요즘은 독자와 비슷한 또래의 실무자들을 직접 앞세우는 방식이 유행하는 것 같은데 - 은 지나치게 현장 경험에 함몰되는 나머지 특정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하는 무용담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정태영 CEO는 이 둘 사이 어딘가에 있는 가장 이상적인 지점에서 강의를 해준다. 나의 업무에도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구조화된 로직을 찾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당장 쓸 만한 도구를 달라는 것인데, 본 강의 시리즈에서 정태영 CEO가 말해주는 몇가지 방법론들이 바로 그렇다. 모듈화되어 있어 필요할 때마다 레고처럼 조립해 넣어도 좋고, 제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이제는 스티브 잡스처럼 이쪽 업계에서 좀 클리셰가 된 인물이 아닌가 싶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로 브랜드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는 기업 대표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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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시리즈에서 가장 집중해서 들었던 건 두번째 강의인데, 이때 현대카드 브랜드 매트릭스라는 것이 소개된다. 몇가지 프로세스를 거쳐 본 브랜드의 본질은 이것이다, 라는 명확한 규정을 내린 다음에는 마케터가 어떤 식으로 작업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원칙이며 프레임워크이다. 현대카드는 1번부터 7번까지 총 일곱 가지의 단계로 스스로의 마케팅 활동을 규격화시킨다. 1번에는 가장 현대카드 다운 것, 즉 본래 정체성인 금융과 관련된 활동들을 넣고, 숫자가 늘어날 수록 여기에서 멀어지는 활동들을 배치하여 7번에 도달하면 현대카드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활동들이 들어가는 식이다. 표면적으로는 여러 마케팅 활동에 엄격한 규칙을 부여해 각각의 범위와 역할을 규정짓는 듯 하다. 그런데 또 자세히 보면 그 안에서도 예외를 허용하여 자유도를 높인다. 그리고 이 예외도 결국 더 큰 울타리 안에서는 브랜딩의 일부분으로 수용하여 브랜드 이미지의 왜곡이나 부조화를 차단시키는 동시에 확장성을 확보한다. 이를 통해 마케터는 특정 마케팅 활동을 할 때 이것이 업의 본질과 가져야 하는 거리감을 조절할 수 있다. 이에 맞춰서 본래 정체성을 단호하게 지켜야 할수도 있고, 과감히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카드의 경우, 일반 소비자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대카드 앱이 1번에 해당한다면 카드 결제 데이터를 활용하여 맛집을 소개시켜주는 고메위크 앱은 좀 더 중간 단계인 4번, 그리고 본래 정체성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날씨 앱은 7번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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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나보고 브랜딩이 무엇인지 한 단어로 정의내리라고 한다면 나는 일관성이라고 답할 것이다. 기업 활동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제품으로 내려가면 의외로 별 거 없다. 자동차, 운동화, 등산복.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우선 마케터는 이들을 어떠한 일반적인 가치와 연결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볼보의 그것은 안전이었던 반면, 나이키에게는 도전 정신이었고, 파타고니아는 지구의 환경에 주목했다. 그럼 그렇게  브랜드의 지향점 - 말하자면 북극성 지표 - 을 정해놓은 다음에 할 일은 무엇일까. 집요하게 이를 파고드는 것이다. 그것도 수십년에 걸쳐서 말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광기라고 했다. 그의 맥락상 과학적 방법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 같지만 내 멋대로 이걸 해석하자면, 지속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결국 하나의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제법 과대평가하지만 그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단순한 메커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똑같은 메시지를 계속 주입받으면 그걸 의식과 무의식 중간 지점으로 가져가 영구적으로 금박 글씨를 새겨놓는 것이다. 브랜드는 이러한 방식으로 일차적인 연상 작용을 트리거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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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는 자칫 잘못하면 동어반복이 될 수 있다. 동일한 대상에게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기가 일정한 레벨을 지나치면 이는 소음이 되어 차단된다. 사람들의 뇌는 중복된 정보를 필터링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과제는 어떻게 같은 메시지를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는지다. 이것에 대한 의외로 간단한 해결책을 현대카드 브랜드 매트릭스가 제공한다고 난 본다. 내 브랜드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하나 있다면, 각 단계별 활동마다 그것의 함량을 정해보는 것이다. 어떤 활동은 제품이 제공하는 혜택과 관련이 있어 메시지를 50퍼센트로 맞추고, 어떤 활동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것이므로 메시지를 20퍼센트 언더로 한다. 또 그 중 일부는 직접적으로 그 기업의 미션과 연관되므로 메시지를 90퍼센트까지 올린다. 이런 기준이 세워지면 광고의 소재에서부터 타깃 오디언스 선별까지 많은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온다. 캠페인을 설계하든 서비스를 기획하든 모든 것들이 마치 핀볼 머신의 쇠구슬처럼 자동적으로 제 자리를 찾아 가게 되는 것이다. 변주라는 것은 일견 본질에서 벗어나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통제 가능한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준다면 오히려 본질의 입체성을 강화해준다. 우리는 이것에 반대되는 케이스들을 많이 본다. 기업의 존재감이 과하게 들어가 로고로 떡칠이 되어 있는 매장, 또는 너무 적어서 제대로 된 CTA도 없이 소멸되는 광고, 제품의 기능과 브랜드 메시지가 서로 상충하는 플랫폼. 내가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이는 모두 변주의 여지를 충분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불행하게도 경험상으로 뒷받침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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