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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과 마술 그리고 상상력의 한계
    + 2022. 1. 22. 21:45

     

    <매직 오브 플라잉 @피카딜리 서커스 광장> 영국 항공, 2013

    옥외 광고판에 앉아있던 아이는 비행기가 해당 구역 상공에 나타나자 일어나서 이를 가리키며 따라간다. 광장의 군중들은 바로 앞의 LED 전광판과 몇 킬로미터의 상공을 번갈아본다. 아이가 지나온 자리에는 해당 비행기의 편명이 정확히 명시되는 문구가 표기된다. 바르셀로나 BA475, 뉴욕 BA272, 암스테르담 BA431. 일부 로테이션에는 비행기 편명의 할인가나 경쟁사 대비 운항 시간대의 우위를 프로모션하기도 한다. 2013년 칸느 광고제의 그랑프리를 비롯해서 각종 광고상을 휩쓴 영국 항공의 <매직 오브 플라잉> 캠페인이다. 이후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지금 봐도 본 캠페인은 경이롭다. 디지털 기반의 광고는 점점 고도화되고, 이로 인해 다양한 기법들이 나오고 있지만 이 정도 수준의 리얼타임 광고는 지금도 흔치 않다. 나왔을 당시에는 최첨단 기술들을 활용한 캠페인으로 알려졌었는데, 본 캠페인을 기획한 오길비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기고문을 읽어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초기 아이디어를 떠올린 이후, 이들은 실리콘밸리의 해커들처럼, 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말마따나 닌자 암살단처럼, 극소수의 인원들만으로 순서대로 이를 접근해 나갔다. 이것은 연속된 문제해결의 과정이었다. 사실 조금만 고민해보면 일반인들도 간단한 할 일 목록을 작성해볼 수 있다. 1) 비행기가 광장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범위를 계산해서 구역을 제한할 것, 2) 비행기 항로와 아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매칭시킬 것, 3) 지나가는 비행기의 항공 편명을 광고에 띄울 것, 4) 비행기가 잘 보일 수 있는 맑은 날씨를 포착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5) 비행기가 상공을 지나가는 순간에만 광고가 나오도록 할 것. 우선 오길비원 캠페인 팀은 1)을 위해 런던의 해당구역 내 높은 건물들 위에 설치된 ADS-B 안테나들을 연동시켜 가상의 트리거 존을 만들어 항공기가 들어오면 트랜스폰더가 전파를 송신하도록 했다. 이렇게 수집된 비행기 위치 정보를 커스텀 어플리케이션에 보내 히드로 공항의 관제 데이터와 비교 분석을 했는데, 이때 광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항로를 계산하여 2)를 해결했고, 자연스럽게 본 항공편의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수하여 3)을 해결하였다. 비행기를 포착했더라도 이는 디지털의 영역이고, 본 캠페인은 실제 관객들이 상공 위의 비행기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야 했다. 4)의 과제가 그것인데, 이는 기상 데이터를 수집한 후 최적의 시계 (視界)가 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날씨 조건을 입력해 이를 만족해야만 광고가 나올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서버에서 약 0.1초 이내로 연산 처리한 후 디지털 빌보드에 전송하여 5)를 가능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법 단순한 기술들의 조합인데, 이들을 실시간으로 오차없이 연동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이 모든 기술적인 문제를 푼다 하더라도 매체의 이슈가 남아 있다. 당시 디지털 OOH는 일반 광고판의 운영 방식과 다르지 않았는데, 주간 또는 월간 단위로 일정 기간 동안 광고주가 계약을 맺고 특정 횟수 만큼 컨텐츠를 송출하는 것이었다. 본 캠페인이 추구하는 역동적인 구조의 광고 - 즉 비행기가 지나가는 동안에만 나오는 광고 - 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때 이들은 인터럽티브 미디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된다. 이는 일종의 시간 공유인데, 이미 다른 광고주가 부킹한 기간 내에 일정 퍼센티지만큼 해당 광고를 침투시켜 재생하고, 이에 대한 광고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다. 오길비원 캠페인 팀은 이러한 신규 매체 기법을 활용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디지털 빌보드를 부킹했고, 더 중요하게는 비선형적인 송출 패턴을 가능하게 만들어, 특정 시간이나 지면에 국한되지 않은 광고를 기획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서둘러 제자리에 배치시키고는 2013년 11월 11일 캠페인은 라이브하게 된다. 루브 골드버그 장치처럼, 어느 한 단계에서라도 오류나 지연이 발생할 경우 전체 캠페인이 무너질 수 있는 캠페인이었다. 당시 증언에 따르면 뉴욕에서 오는 비행기가 전광판을 지나기 직전에도 캠페인 담당자들은 성공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전광판의 아이가 일어나서 지나가는 비행기를 정확히 가리켰을 때, 이것은 이들에게도 처음이었던 것이다. 기적의 순간은 이를 본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마술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은 흔히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이를 순수하게 마법으로 받아들이는 부류고 또 하나는 일종의 트릭으로 받아들이는 부류다. 그러나 어느 관점에서 보든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매직 오브 플라잉 @M4 고속도로> 영국 항공, 2013

     

    아서 C 클라크의 말처럼 충분히 기술이 발달하면 마술을 재현할 수 있다. 그것도 일관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매직 오브 플라잉> 캠페인이 선구자 역할을 했던 핵심 기술은 위치 데이터에 기반한 동적 광고 송출인데, 지금은 마케팅 분야에서 지오펜싱과 프로그래매틱 바잉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지오펜싱은 GPS를 사용하여 가상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추적하고자 하는 대상이 이 범위 안으로 들어오면 데이터를 보내는 기법이다. <매직 오브 플라잉> 캠페인에서 ADS-B 안테나들로 만든 런던의 트리거 존이 이에 해당한다. 만약 사용자가 위치 정보 공유에 동의한다면 해당 기능을 통해 마케터는 특정 구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푸시 알림을 보내거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한 사례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버거킹의 <와퍼 디투어> 캠페인이다.  지오펜싱을 미국 전역의 맥도날드 매장에 적용하여, 사람들이 들어가는 순간 인근의 버거킹 매장 위치와 함께 1센트 와퍼 쿠폰을 주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것이다. 디지털 공간 내에서 추적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집단적 의식 속에 익숙해지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반해, 이를 실제 공간과 연계한 활동들은 여전히 신선하게 느껴진다. 결국 지오펜싱은 아직 POC 단계에서 벗어나진 못한 것 같은데, 온라인 상에서 볼 수 있는 마이크로한 수준의 추적이 아직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 그리고 이게 가능하더라도 개인 정보 보호의 측면에서 법적인 리스크를 모두 회피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물론 이 상대적인 새로움만 가지고도 충분히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는 티핑 포인트는 이것이 리테일 공간과 접목하는 순간이다. 지오펜싱을 제품 단위의 구역까지 나누어 적용한다면, 이커머스 시장에서 그러했듯이 광고 뿐 아니라 제품의 카탈로그, 매장 진열 그리고 재고 관리 측면에서도 정확한 성과 측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얼마전에 입수한 베스트 바이의 리포트에서는 이미 이를 일부 매장에서 실험 중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판매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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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오펜싱과 달리, 프로그래매틱 바잉은 이미 보편화된 기술이다. 단순히 말해 광고 인벤토리를 거래하는 과정을 자동화한 것이 프로그래매틱 바잉인데, 인간의 개입을 줄이고 세분화된 타깃과 미디어의 시스템 운영을 통해 광고를 노출한다. 다양해지는 채널과 플랫폼으로 인해 사람들이 광고를 직접 계약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래서 프로그래매틱 바잉은 이 자리에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을 적용하여 최적의 마케팅 성과를 달성할 수 있게 한다. 목표에 따라서 마케팅의 모든 요소들이 적재적소의 위치를 찾아 가는 것인데, 이로써 더 큰 규모로 정확한 타깃에 광고를 도달시킨다. 이 때, 프로그래매틱 바잉의 핵심은 RTB, 즉 실시간 입찰에 있다. 광고 지면을 직접적으로 사고 팔았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RTB에서는 밀리 초 단위로 각 광고 지면의 효율을 분석하여 구매가 이루어진다. 결국 가장 높은 효율을 달성할 수 있는 미디어 믹스를 인공지능이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수준의 스피드와 디테일로 짜주는 셈이다. 여기서 마케터는 업무의 전환이 필요해진다. 이제 그가 할 일은 광고를 전달하기 위한 매체의 특성이나 단가, 효과성 등을 분석하는 것 보다는 - 그것은 이미 자동화되었으므로 - 이들을 통해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더 명확하고 입체적으로 정의 내리는 것이 되었다. <매직 오브 플라잉> 캠페인에서 이는 디지털 빌보드 광고를 비행기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송출하는 것이다. 아주 원시적인 형태였지만, 오길비원 캠페인 팀이 적용한 인터럽티브 미디어라는 것은 프로그래매틱 바잉이 보여주는 동적인 광고 지면 구매와 동일 선상에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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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은 정교해지고 마술은 일상화 되었다. 결국 사람에게 남는 것은 상상력 밖에는 없다. 그의 세계는 상상력이 바닥나는 지점에서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다행히 난 그 한계를 아직도 테스트하고 중이다. 며칠만에 외출을 했고 일부러 먼 길을 걸었다. 코로나 검사 주차장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이 광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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